[2월 독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월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번에도 문학이다. 🖋
역시 내 취향은 문학임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문장 하나하나 읽을 때, 영화처럼 선명하게 장면이 그려지는 게 좋다. 실제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 제목은 <Goodbye Again>이고, 국내에서는 <이수>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무려 1961년 작품이다.
주인공 폴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이다. 폴은 6년 넘게 교제해 온 남자친구 로제가 있다. 하지만 로제는 폴을 세심하게 생각해 주기는커녕, 다른 여성들과 하룻밤을 보내며 폴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폴의 밤을 외롭게 한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폴은 그의 행동을 다 받아들인다. 자신은 로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상대를 향한 헌신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나날들 중, 폴의 클라이언트 아들인 시몽과 알게 되었고 시몽은 폴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외로움에 사무치던 폴은 그녀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시몽에게 점점 경계심을 풀고 깊은 사이가 되어 간다.
시몽과 시간을 보내면서 로제와의 관계의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은 로제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이 작품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사강은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책 마지막 옮긴이 김남주님의 해설 보며 재밌었던 내용이다. 왜 하필 브람스였을까? 했는데 이런 장치가 숨어있었다니 !
이번 토론 주제. 토론하면서 자꾸 다른 길로 많이 샜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간단히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본인이 폴이라면 로제/시몽 중 누굴 선택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 시몽을 선택했는데 아무래도 로제의 행동이 너무 문제여서겠죠. 그에 반해 사실 시몽은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청년이고. 하지만, 그냥 본인 가치관/성격 배제하고 작품에서 보여진 폴의 입장에 완전히 이입한다면 로제를 선택했을 거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 포함^^ㅠ) 안타까운 폴 ···
또 사람들과 다들 한 번쯤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면, 정말 50년도 넘게 봐야 할 텐데 그 사랑의 온도가 계속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해보지 않았냐며 얘기 나눴는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했다.
토론 내용 외의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자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연애가 어떻게 파국으로 가는지, 그 사랑의 불안함을 너무 잘 표현했다. 작가가 24살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표현의 깊이가 놀랍다. 심리 묘사가 섬세하고 감정이 잘 전달된다. 오래된 연인의 권태로움과 새로운 사랑의 흔들림. 하지만 그 새로운 사랑조차도 이미 본 영화처럼 뻔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직감하는 사람의 어지럽고 복잡한 감정을 잘 보여줬다. 책의 끝부분인 결말로 치달을 때가 가장 클라이막스인데,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정말 신선했다. 사랑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사강은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마 이 말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말 아닐까.
p. 60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p.101
시몽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완벽한 어떤 것, 적어도 어떤 것의 완벽한 절반이었다. 이런 일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 완벽하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줄곧 앞장서는 입장, 대개 혼자 애쓰는 입장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 일에 지쳐 있었다. 그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시몽은 사랑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유난히 특이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자신이 개입된 이 연애의 초입에서, 예를 들어 로제와의 관계 초기에 있었던 흥분과 약동 대신 발끝까지 휘감은 거대하고 나른한 권태를 느꼈다.